2012년 1월 15일 일요일

[도서리뷰]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

이 책의 저자인 엘리 프레이저는 미국의 정치시민단체인 무브온의 이사장이자 세계 최대 시민단체중의 하나인 아바즈의 공동 창립자이다. 

이 책은 최근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터넷 기술이 몰고오는 인터넷의 개인화 흐름이 사용자의 지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더 넒게는 사회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에 관한 화두를 여러가지 사례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 보편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이나 테블릿 같은 휴대용 기기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형태의 단말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이러한 휴대용 단말들이 더더욱 보편화되고 모든 형태의 전자제품에 장착될 M2M 기술까지 생각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24시간 늘 함께 연결되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일련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구매 정보, 지인과의 대화 정보, 특정 웹사이트에 대한 방문 기록, 위치 정보, 심지어는 언제 어느 시간에 어떤 TV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어떤 음악을 들었으며 무슨 책을 읽었는지에 관한 무수한 정보들이 네트웍의 어딘가에 데이타의 형태로 남게 될 것이다. 책의 저자 엘리 프레이저는 이러한 사용자 데이터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특히 그 가운데 '개인화'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구글은 페이지 랭크기술을 이용해 웹사이트에서 사용자의 클릭정보를 분석하여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은 에지랭크 기술을 이용해 컨텐츠의 중요성이나 지인과의 친밀도, 해당 컨텐츠가 포스팅된 시간정보를 이용해 해당 글의 내용을 사용자의 뉴스피드에 보여줄 지 말지를 판단한다. 이러한 개인화가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정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각 개인의 삶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한번 개인화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사실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게 되어 공동체로서의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빈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컨텐츠는 내 주변에서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것 만을 보게되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게 되는 순간 '우리'는 없어지고 '나'만 남게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사건과 관계를 만나는 놀라움을 배제함으로써 완벽하게 필터링된 세상은 배움의 기회를 제한한다. 개별화는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들어주는 개방성과 집중의 균형을 뒤엎을 수 있다. (p122)"

개인화 필터에 의해 왜곡된 세상에 대한 정보는 인간의 확증편향성과 결합하여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갖게 하려는 노력 또는 그 가능성을 무력화 시킬 것이다. 

한편,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데이타가 그 개인을 프로파일링 할 수 있는 기술에 사용되고 특정 기업 또는 정치세력에게 이용된다면, 해당 기업 또는 정치세력은 특정 개인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거나 정치적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설득 프로파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설득 프로파일을 통해 특정 상품이나 정치적 사고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는 부류에 속하는 개인은 쉽게 해당 기업과 정치세력의 목표가 될 것이다. 그룹단위의 마케팅이 아닌 철처하게 개인화된 마켓팅인 셈이다. 

" 인터넷에서 개인의 행위를 기록하여 그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설득 프로파일'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미래의 행동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p165)"

개인화의 위험성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을 사회와 분리시켜 사회가 이루어내야 하는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 인터넷 시대의 검열은 특정한 단어나 의견을 바로 금지하는 대신 2차적 검열을 되풀이 한다. 내용과 배열을 조작하고 정보의 흐름과 관심을 왜곡한다. (...) 인터넷 초기 지지자들이 예측한 것과는 달리 인터넷은 권력 분산화의 길이 아니라 집중화의 길로 가고 있다.(p190)"

"개별화는 우리에게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고 조작될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세분화되고 대화에 적대적인 공동영역이 생겨나게 했다(p220)"

개인의 데이타를 손에 쥔 기업은 권력을 얻게 될 것이고 필터링에 의해 개인화된 정보는 여론 조작에 악용될 수 있다. 기존의 정치세력은 더 큰 잠재적 권력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은 여전히 필터링된 자기만의 세상안에 들어앉아 사회와는 분리된 채 자기만의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필터버블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을 양산할 것이며, 기득권을 손에 쥐고 있는 주체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개인화 필터링에 의해 조작된 세상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설정은 어쩌면 엘리 프레이저의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어쩌면 그러한 상황까지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용자라는 시민에 대한 불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엘리 프레이저를 엔지니어가 아닌 시민운동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면 이러한 걱정이 이해는 갈 것 같다. 엘리 프레이저는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바를 다음과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을 그대로 비추기 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 지 보여주는 미디어를 만드는 것. 우리의 관심에 영합하지 않는 시스템, 우리의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한 질문을 가로막지 않는 시스템, 우리를 무한 반복의 함정에 빠뜨리지 않는 시스템을 세우는 것(p302)"

엔지니어 이면서 사용자기도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저자의 걱정은 다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개인화 필터링이 가져다 주는 극단적인 상황 설정, 즉 각 개인은 개인화된 필터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삶은 비단 모니터 앞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 관계와 미디어의 다양성은 인터넷 외에 개인이 정보를 흡수하는 채널이고, 개인화된 기술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저자와 같은 깨어 있는 시민 운동가들이 이 책을 쓴 것 처럼 다양한 노력을 통해 각 개인들이 시민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각인시킬 것이다. 오히려 작년 한해 세계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트위터와 같은 각종 소셜 네트웍 서비스를 통해 분출된 것 처럼, 사용자들은 세상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존재하지 않으며, 때로는 사회라는 보다 큰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늘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직전에 읽었던 '상식의 배반'이라는 책과 함께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하나 주고 있다. 엘리 프레이저가 묘사한 그런 극단적인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필터버블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겠다는 사실과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인가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판단하고자할 때 보다 객관적이기 위해 좀 더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사용자는 개인화 필터링을 통해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야 하고 늘 새로운 것을 통해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TV앞에 하루종일 앉아 수동적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couch potato'가 되기 보다, 늘 고민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사용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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